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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 ③] 분노, 삶의 거울 속에 핀 검붉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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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함께 춤을>세 번째 서평. 새로운 챕터는 증오가 두려움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미국의 극우 단체 유나이트 더 라이트에는 평범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뒤틀리고 증오에 찬 모든 세계관의 중심에는 평범한 사람의 분노가 있다. 분노는 정말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주범일까? 분노를 해악으로 보는 스토아주의 철학자 세네카와 불교도 샨티데바의 이야기와, 분노는 이성적일 수 있으며 때때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페미니즘 철학자 메릴린 프라이, 오드리 로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분노에 대한 찬반 시선이 오가며 저자는 자신의 결론에 천천히 도달한다.

나쁜 분노와 좋은 분노를 구별할 필요는 없으며,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에 정의로운 분노만 선택해 느끼지 않는다. 때로는 카페에 줄이 길 때, 아끼던 유리잔이 깨질 때도 우리는 사소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은 에너지 낭비도 아니며 단속할 감정도 아니다. 내가 내 삶을 소중히 여기기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기쁨을 찾아야 하지만 사소한 것에 분노해서는 안 된다’는 가스라이팅에 익숙하다. 분노할 때 그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는 데도 능숙하다. 저자는 내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모든 분노를 솔직하게 느끼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건설적인 분노만 느끼려 하면 오히려 더 기괴한 정당화 논리에 갇혀 눈과 귀가 닫힌 혐오 집단(인셀)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화를 내는 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한 방식이며,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관심사로 구성된다. 좋은 분노도 나쁜 분노도 없다. 그저 분노가 있을 뿐이다. 분노를 억제하려 자신을 다그치거나 길들일 필요 없다. 분노를 그냥 느끼는 방법은 뭘까?

발췌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실패, 방황 또는 외로움을 맞닥뜨리기보다는 차라리 적을 만들기를 원한다. 적이 있으면 자기 의심으로부터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분노에 대해서 거울을 똑바로 들여다보기보다는 차라리 대체 현실 속에서 자신을 놓아 버리려 한다. 기괴하고 유치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귀에다 거짓말을 속삭이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를 불의에 맞서 싸우는 도구나 적을 파괴하는 무기로 만들 수 있고, 그냥 분노를 느끼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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